용인에서 건설 현장을 전전하던 나는 인원 축소라는 말 한마디에 팀 전체가 잘려 나갔다. 그날 저녁, 현장에서 같이 땀 흘리던 동료들과 마지막 술자리를 했다. 다들 웃으면서 잔을 부딪혔지만, 속마음은 씁쓸했다. 그 길로 각자 숙소로 흩어졌고, 나 역시 짐을 챙겨 수원 터미널로 향했다.
충북 가는 버스에 올라탔을 때, 창밖 풍경이 괜히 낯설게 느껴졌다. 고속도로 위엔 짐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미친 듯이 달리고, 옆 차선에선 작은 차들이 서로 앞서려 발버둥치듯 달려 나갔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앞으로 뭐 해야 하나’ 하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앉아 있는데, 예전에 20대 초반에 잠깐 했던 웨이터 일이 떠올랐다. 뭐에 홀린 듯 휴대폰을 켜고 ‘웨이터’를 검색했더니, ‘웨이터 나라’라는 사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만들었던 아이디가 아직 남아 있길래 접속해 봤다. 광고가 줄줄이 올라와 있었는데,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에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예전부터 밤일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나이라는 게 항상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몇 군데 광고를 보고 문자를 돌렸다. 결과는 뻔했다. 대부분 “죄송합니다”라는 답만 돌아왔다. 서울이나 경기권은 숙소 지원도 없었고, 나이 때문에 아예 보기도 전에 잘린 경우도 많았다.
며칠을 그렇게 허송세월하던 중, 사이트에서 우연히 내 눈을 사로잡은 댓글 하나가 있었다.
“그 나이에 무슨 웨이터냐. 나이트나 가든가, 아니면 발품이나 팔아라.”
솔직히 비아냥이었지만, 그 말이 오히려 자극이 됐다. 그냥 앉아서 주저앉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작정 버스를 타고 면접을 다니기 시작했다. 면접은 대부분 저녁이라, 미리 여관방을 잡고 하루를 버티곤 했다. 처음엔 낯설고 허무했지만, 다섯 군데쯤 발품을 팔고 나서야 집에서 서너 시간 거리의 맥주집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밤일로 돌아왔다. 마음속에선 여전히 ‘늦은 나이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ㅡ 오늘은 여기까지